1. AI(인공지능)의 발전
최근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매우 뜨겁습니다. 컴퓨터가 사람인 것처럼 대화해 주는 채팅 게임인 '맥스'가 출시된 것이 1994년이었는데, 이때만 해도 맥락에 맞지 않는 답변을 한다던지, 말을 못 알아들어서 일정한 답변만 반복적으로 하는 등 AI 채팅 프로그램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컴퓨터가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로 많은 이들이 신기해했고,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24년, 이제 온 세계는 챗GPT에 열광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인공지능을 개발자들만 활용할 수 있었다면, 챗GPT의 등장으로 인해 일반 사용자도 인공지능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비교도 안될 만큼 똑똑해진 맥스가 등장한 것입니다.
2. AI(인공지능)의 창작 활동
2023년에는 챗GPT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책을 발간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제목은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입니다. 챗 GPT는 한글 번역과 삽화까지 담당했다고 하는데, 책을 완성하는 데에 겨우 7시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공동 저자에 챗GPT가 등재된 책만 해도 200권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미국 OpenAI는 2024년 초에 글자로 명령어를 입력하면 고화질 동영상을 만들어내는 Sora라는 서비스를 공해한 바 있습니다. 사용자가 챗GPT를 사용하듯 문자를 입력하면 최대 1분 길이의 고화질 영상을 신속하게 생성해 준다는 것입니다. OpenAI는 최근 Sora를 활용한 결과물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는데 그 품질이 너무 좋아서 많은 창작자들과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습니다.
3. AI의 인격적 지위
이처럼, 과학기술의 발달은 신체와 정신이란 이원론적 방법으로 인간을 이해하려고 했던 과거의 철학적 기조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형태의 사고를 진전해 볼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제는 AI가 사람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분야에서 사람보다 더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AI도 어떤 권리를 갖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등의 의문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공지능을 활용한 결과물의 소유권은 누가 주장할 수 있는지가 사회의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의무와 책임 및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동물과 인격을 논하지 않았고, 사람이 프로그래밍한 컴퓨터와는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인공지능과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인가를 고민해봐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입니다.
지금은 사람이 명령어를 입력하여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만약 인공지능이 스스로 명령어를 입력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영향을 사회에 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논하는 것이 맥스 수준의 인공지능이라면 인격적 지위가 없다고 단순히 결론 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 수준이 인간 지능에 한참 못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계산주의 모델에 따른 인공지능 시스템은 그 성능이 어떠한가 와 관계없이 매우 정교하게 구성된 프로그램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책임과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이성적 사고가 가능한 수준의 지능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인격의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인공지능도 인간의 신체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지능이 얼마나 뛰어난지와 관계없이 인격적 지위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4. 인조인간의 인격적 지위
그런데, 이러한 논의 끝에는 매우 뛰어난 인공지능을 탑재한 인조인간은 인격적 지위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뇌가 정지되었으나 신체 기능은 살아있는 이에게 인공지능을 이식하게 되면 우리는 그 존재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존재에게는 인격적 지위가 있는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중요한 개념이 바로 '인격 동일성'입니다. 계산주의자는 시공간적 불연속성이 있다 하더라도 과정이 같다면 동일하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프로그램을 이 컴퓨터에서 실행하다가 멈추고 다른 컴퓨터에서 이어서 실행할 수 있다면 비록 시공간적 불연속성이 있다 하더라도 동일한 과정으로 되돌아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개념을 통해 인격의 불멸성을 기대하기도 합니다. 즉, 두뇌에 있는 정보를 저장장치에 저장해 두면 언제든 다시 돌아가서 재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디는 분리의 문제를 제기하며 인격에는 이러한 동일성 개념을 적용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습니다. 홍길동이란 사람이 죽기 전에 그의 정신세계를 저장해 둔다 하더라도 반드시 한 명에게만 이식되는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적으로는 10명에게도 100명에게도 이식될 수 있는데, 이때 유일성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즉 책임의 주체가 하나 이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인격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정부의 엄정한 관리 아래 인간의 정신 데이터를 반드시 한 명에게만 이식하도록 관리하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은가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분리의 문제가 발생하면 동일성이 깨어진다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의 조건은 마음과 신체와 두뇌가 통일된 유기체로서의 인간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조건들이 필요에 의해서 대체되고 결합될 수 있다면 동일성의 근거를 어디에 둘 수 있는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유일하지도 않고 동일하지도 않은 개체에게는 책임의 주체가 되는 인격을 논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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