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격의 특성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을 논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가 바로 인격(person)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의 신체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인격이 존재한다고 상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문제는 이 인격이 무엇인가를 정의해보려고 하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철학사적으로도 인격에 대한 일치된 관점이나 명시적인 합의를 찾기는 어렵다 보니, 인격을 인간이나 자아, 마음, 정신의 개념과 혼용하여 사용하거나, 일관적인 기준 없이 자의적으로 구분하여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인격이 무엇인지 이해하기도 혹은 설명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중세 철학자 보이티우스나 아퀴나스는 인격을 합리적이며 지성적인 본능을 지닌 개별적 실체라고 정의했습니다. 다른 철학자들은 인격을 구성하는 속성에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나 기억력 또는 문제해결 능력 등을 포함시키기도 하였는데, 인격에 가장 부합하는 속성이 무엇인지 보다는 인격이라는 것이 어떤 속성을 지닌 개별적 실체임을 강조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인격의 개념
맥콜이란 철학자는 인격은 개별적인 인간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설명하기도 하였습니다. 인격은 자아(self)나 인간종(human being)과는 다른 것인데, 세 가지 속성 모두 인간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개념이라고 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아는 나를 인지하는 사고와 기억 등을 강조하는 반면 인간종은 생물학적 실체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한편, 인격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권리, 의무 및 책임 등과 같은 사회적 개념으로 개별적 실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맥콜의 관점을 통해 우리는 인격이란 것은 사회적 맥락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은 "저 사람은 인격이 훌륭해"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이처럼 인격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둘 이상의 인간이 있을 때만 사용 가능하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여기에서 한 개별적 실체를 인격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그 개별자를 도덕적이고 법적인 행위의 주체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보고 인격체라고 생각하지 않는 점에서도 이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3. 동일한 인격의 기준
이처럼 인격이란 사회 속에서 법적이고 도덕적인 행위의 주체로 인정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동일한 인격의 기준이 중요한 사항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인격의 동일성은 구체적으로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을지 애매하기도 합니다.
로티라는 학자에 따르면, 인격 동일성에 대한 기준은 적어도 네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첫 번째는 인격들의 집합을 분류해 낼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두 번째는 유사한 속성을 공유하는 인격들을 수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한 문제이며, 세 번째는 다른 상황과 맥락에서도 하나의 인격을 동일한 자로 재확인하는 기준에 관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한 인격을 동일한 인격으로 확인하기 위해 어떤 특성을 사용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로티의 기준에 의문을 품는 연구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별적 인격마다 자신만의 어떤 특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만 동일한 인격 확인이 가능하다는 의문입니다. 물론 한 개인이 지닌 어떤 속성이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드는 핵심적인 속성이 될지라도, 그것이 반드시 본질적이거나 불변적인 속성일 필요는 없다는 반론입니다. 오히려 한 개인의 동일성을 구성하는 본질적 속성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수적 동일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성격과 같은 속성 만으로는 동일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동일한 인격을 구분하려면 하나의 인격만이 존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둘 이상의 개체가 모든 속성을 공유한다고 해도, 우리는 이 둘을 하나의 인격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닮을 수는 있으나 동일할 수는 없습니다.
4. 동일성의 신체적 기준
결국, 사회적 맥락에서 책임 주체로서의 동일한 인격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인격이 하나의 신체를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한 개별적 실체가 갖고 있는 하나의 신체만이 오직 동일한 인격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 개별적 주체만이 갖고 있는 심리적 기준으로 동일성을 판단할 수는 없을까 의문을 가진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기억의 불충분성 때문에 현실화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상충하는 기억을 갖고 있을 수 있고, 그런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해서 책임의 주체를 가린다는 것은 비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기억을 통한 주장을 확인해 줄 수 있는 것은 물리적 신체가 그곳에 존재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즉, 기억이란 속성조차 신체에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심리적인 기준만으로는 유사성과 동일성을 구분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신체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고 있으므로 어느 때에든지 수적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리적인 기준은 수적으로 구별되기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성격이 동일하다는 말을 매우 유사하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것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타인에 대해서는 신체를 동일성의 기준으로 삼는 대신, 자신에게는 심리적 기준을 적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에 해당될 것입니다. 기준이란 것은, 특별히 책임 소재를 묻는 기준은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동일하게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회 속에서 책임을 지는 주체로서의 인격이란 개념은 필연적으로 신분 확인이라는 절차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고, 신분 확인을 위해서는 개별 주체의 신체가 그 기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 물리적인 시공간을 넘어 사이버 세상에서 소통하는 21세기 우리들의 삶에도 신체는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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