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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이성과 허영을 지닌 인간에 대한 재조명

by juneane 2024. 3. 6.

1. 르네상스 시대 인간에 대한 재조명

사람들은 흔히 중세시대를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이는 중세시대에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4세기에 시작된 르네상스 운동은 인간을 역사의 중심으로 다시 돌려놓았습니다. 르네상스의 운동으로 인해 인간에 대한 탐구를 중요시하는 인문학이 탄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문학적 정신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외부의 권력에만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이성과 지혜를 이용하여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적 사고는 나 외의 타인을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인간의 바람직한 삶을 위해서는 타인과의 관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은 타인의 글과 말, 표현을 어떻게 왜곡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가를 중요시합니다. 말속에 숨겨진 의도를 읽어내는 능력도 중요합니다. 단순히 보이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작품 속에 담긴 심층적인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을 이해했다고 합니다.

 

2. 인간의 이성을 중시한 데카르트

이러한 노력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넘어 나 자신에 대한 이해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나 자신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타인과의 긍정적이고 건전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르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상징적인 말을 남겼는데, 이는 모든 지식체계의 토대를 신이 아닌 인간을 중심으로 세우고자 하는 노력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은 순수무오한 인간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데카르트는 인간이 이성을 가졌기 때문에 합리적인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이성을 매우 중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이성 위해 모든 지식을 다시 쌓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였습니다.

 

그는 방법서설이라는 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믿고 있는 어떤 것들이 실제로는 일부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관점에 동의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은 모두 어떤 것을 의심할 수 있는 이성을 타고난다고 생각했는데, 의심의 끝에는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부정할 수는 있으나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의심하는 나 자신이 있는 한 나는 존재한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즉,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실존은 육체가 아니라 순수한 이성 또는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육체와 정신은 구분된다는 심신이원론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3. 허영을 지닌 인간

그런데, 사실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만은 아님을 너무 쉽게 알게 됩니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비합리적인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매해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며칠이 못 가서 그 결심이 무너지곤 합니다. 거짓말하면 안 된다라는 도덕관념을 갖고 있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거짓말을 쉽게 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우쭐되지 말고 겸손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타인보다 낫다는 생각을 통해 쾌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간은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기도 하지만 다분히 감성적이며 충동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로 이해했던 데카르트의 주장에 반박하는 움직임이 생긴 것은 어쩌면 당연하 결과일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부끄럽고 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철학자 중 한 명이 바로 파스칼입니다.

 

파스칼은 인간의 사유체계가 아닌 심정적 측면에 주목했습니다. 물론 그도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인간의 이성만을 강조하다 보면 인간을 매우 편협하고 제한적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파스칼은 인간이 무엇을 사랑할 때에는 이성이 아닌 심정을 활용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심정은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며, 남들의 존경을 받으려는 욕망을 일으킨다고 설명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인간은 허영을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파스칼은 자신의 책 팡세에서 허영은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것으로, 심지어 철학자들도 자신의 찬양자를 갖길 원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4. 만물의 영장 인간

이처럼, 인간은 빛나는 이성을 지닌 만물의 영장인 동시에 한없이 초라해질 수 있는 허영심 가득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반된 특성 때문에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하는지도 모릅니다. 이성적으로 볼 때와 심정적으로 느낄 때의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문학은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높여서 행복한 인간관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이성과 허영을 인식하는 것 자체도 큰 의미가 있음을 깨우쳐줍니다.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실망할 때에는 날카로운 이성적 사고가 아닌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줄 수 있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때는 갈고닦은 이성을 활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두 가지 상반된 무기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만물의 영장임을 나타내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성과 허영심을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설명 그림입니다.

 

인간의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중요시한 데카르트와, 인간의 비자발적이고 충동적인 삶의 모습에 주목했던 파스칼의  전통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그만큼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상반된 두 가지 관점으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