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행복한 삶에 대한 정의
인문학은 간단히 말하면 나와 타자 사이의 행복한 관계를 지향하는 학문입니다. 인문학이 오래전부터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바로 인간이 행복한 삶을 원하기 때문이며, 인문학은 행복한 삶에 대한 다양한 관점 및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삶에 대한 정의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즐거움이 가득한 상태를 행복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내면의 수양을 통해 평정심을 찾은 상태를 행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어떠한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을 행복한 삶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푸코(Michel Foucault)라는 철학자는 권력의 문제는 단순히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피지배자가 자기 스스로를 검열하는 문제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인간 개인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학교, 감옥, 병원 등을 통한 훈육이 시작되었다면, 오늘날에는 누가 자기를 지배하는지도 모른 채 자기 검열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푸코는 한 인간이 어떻게 권력에 맞서 자유로운 삶, 행복한 삶,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습니다.
푸코는 헬레니즘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헬레니즘 철학의 특징은 인간의 정신을 물질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플라톤이나 기독교 등 서양철학의 주류에서는 인간의 영혼은 물질과는 다른 정신적 실체로 인식한 반면, 헬레니즘 철학에서는 인간의 정신도 철저하게 물질적인 것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인간의 정신을 이해하려는 오늘날에 더욱 각광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헬레니즘 철학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학파에는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가 있습니다. 이 두학파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은 두 학파의 성격은 다르지만 모두 인간의 행복한 삶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는 전체와의 조화로운 삶을 위해서 개개인의 수양이 필요하다고 보았던 스토아학파와 개인주의적 삶의 향유를 중시했던 에피쿠로스학파를 통해 행복한 삶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이를 추구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2. 전체와의 조화를 중시한 스토아학파
스토아학파는 세계가 철저한 질서와 인과관계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는 결정론적 관점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어떤 일이 발생했다면 그 일이 발생한 원인이 분명히 있고, 이 원인을 알게 된다면 앞으로 발생한 결과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라플라스라는 철학자가 주장했던 기계론적 결정론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입니다.
스토아학파의 이러한 세계관을 가장 잘 나타내는 책 중 하나는 신본성론입니다. 이 책은 우주에는 어떠한 고유한 질서와 욕구가 있으므로 우주에 속한 개개인들은 이러한 전체 질서를 잘 파악하고 그것에 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 또는 개인은 자연과 조화되도록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연스럽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잘못된 판단이 자연 전체와 상반된 결과를 가져온다면, 우주적인 질서를 흩트려 뜨리게 되고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은 결국 개개인에까지 돌아온다는 입장입니다. 스토아학파에 속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명상록을 통해서 전체에 이로운 것은 부분에게도 해롭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스토아학파의 관점은 삶에 대한 윤리적 태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인간의 주관적인 감정에서 초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바로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입장에서 불리한 일도 전체의 입장에서는 필요한 과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감정에 치우쳐서 전체의 질서를 해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개인에게 독이 되며,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삶에 초연하는 자세를 지키는 것이 핵심이라는 입장입니다.
3. 에피쿠로스학파에 대한 오해
반면, 에피쿠로스학파는 개인적 감정에 초월하라는 스토아학파와는 개인적 즐거움을 추구하라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흔히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에피쿠로스학파가 쾌락만을 쫓는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에피쿠로스학파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은 전체 공동체를 중시했던 철학적 학파의 입장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고대, 중세 시대에는 오직 통치 계급 등 일부 세력만 쾌락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쾌락을 누구나 향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에피쿠로스학파의 주장이 매우 불편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에피쿠로스학파를 반사회적인 집단으로 바라보았던 시선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에피쿠로스학파는 개인의 육체적 쾌락만을 추구한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에피쿠로스학파에서 말하는 쾌락은 단순히 육체적 쾌락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과 같은 정신적인 쾌락을 포함하는 개념이며, 이들은 이러한 쾌락을 위해 교외 정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 공동체에서는 개별 구성원들이 서로를 평등하게 대하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민계급으로 취급받던 노예나 여자들도 이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4. 자유를 중시한 에피쿠로스학파
에피쿠로스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명인 루크레티우스는 우주가 원자들의 우발적인 마주침을 통해서 우연히 생겨났다는 우연론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연론과 개인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루크레티우스는 한 인간이 오늘 괴로운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어떠한 인과관계 때문이 아니라 그저 우연히 발생한 사건들로 인해 우울함과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괴로운 감정도 우연히 찾아온 것이니 내일까지 그 감정이 지속될지 혹은 내일에는 행복한 감정이 찾아올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행복이란 것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우연히 발생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쾌락을 자극 추구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들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은 바로 쓸데없는 욕망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상태에 이르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는 서로 다른 방법을 통해 행복한 삶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두 학파 모두 행복을 위한 개인의 노력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행복한 삶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울림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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