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물의 근원과 유물론적 입장
만물의 근원에 대한 탐구는 오래전부터 신학, 철학, 생물학, 지질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져 왔습니다. 왜냐하면 만물의 근원을 이해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왜 그런 형태와 상태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오래된 가설 중에 한 가지는 바로 유물론입니다. 유물론이란 모든 것이 물질에서 기원한다는 철학적 입장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 인간의 신체와 마음, 인간 사회가 모두 물질적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모든 현상은 물질의 운동과 변화를 통해 설명될 수 있습니다.
유물론의 대표적인 인물은 고대 그리스 데모크리토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불변하는 물질적 입자, 즉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세상의 다양한 현상은 이 원자들의 결합과 운동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이후 물리학과 생물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대 과학은 유물론적 관점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자연 현상을 연구하고 설명하는데 유용한 방법론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유용한 유물론에도 뚜렷한 한계가 있는데, 그것은 정신적, 문화적, 사회적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가령, 인간의 사랑이나 예술가의 정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회적 가치와 같은 정신세계를 물질적 현상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소크라테스는 사물의 본질을 물질이 아닌 정신, 본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그의 제자 플라톤, 그리고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2. 결정론적 입장과 의미 :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라플라스
우선 플라톤은 만물은 모두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그는 결정론을 주장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결정론이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어떠한 명확하고 확정된 원리와 법칙에 의해서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한 어떤 명확하고 확정된 원리와 법칙은 이데아를 말하는 것인데, 이데아란 세상의 모든 사물의 본질이자 이상적인 형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데아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변하지 않는 사물의 본질이기 때문에, 세상은 이데아의 영향을 받아 구성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플라톤은 이 이데아를 통해서만 본질을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플라톤과는 다른 입장에서 결정론을 옹호했는데, 그는 신이 운동의 근원이며 사물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는 신이라는 개념보다는 의지와 목적이 없는 순수한 능동성만을 지닌 영국 국왕과 같은 이름뿐이 왕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생물학과 같은 자연철학을 기반으로 형상을 만드는 질료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른이 존재하는 것은 아이가 있기 때문이며, 아이가 존재하는 것은 정자와 난자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결정론(determinism)이란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결정론은 어떤 측면에서는 유물론과 비슷하게 과학적인 사고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입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나 라플라스가 결정론을 지지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라플라스는 이론적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에 대한 정보, 즉 입자의 속도나 위치와 같은 정보를 알 수 있다면 미래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이러한 결정론적 주장은 라플라스 주의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다만, 결정론은 인과관계로 인해 반드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며, 세상의 모든 일들은 이미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다는 숙명론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루크레티우스의 우연론적 입장
반면, 우연론이란 세상의 모든 것은 그저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지 어떠한 확정적이고 명확한 법칙이나 원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입니다.
이러한 우연론을 주장한 유명한 인물로는 루크레티우스가 있는데, 루크레티우스는 로마 시대 철학자로서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을 계승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우연론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원자의 우연한 조합과 이동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처럼 원자의 우연한 조합과 이동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을 만들어내며, 우리가 속해있는 이 세상의 근원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루크레티우스는 특히 ‘원자의 편차’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는 원자가 자기 자신에 내재되어 있는 어떤 기본적인 운동 경로에서 일부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원자의 편차를 통해 우연성의 원리가 발현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4. 현대 사회에서의 유물론, 결정론 및 우연론의 의미
세상의 모든 것이 어떠한 원칙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정론적 시각과 세상의 모든 것은 우연히 발생한다는 우연론적 시각 중에 어떠한 것이 더 맞는 설명인지에 대한 생각은 각자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또한, 유물론이 인간 정신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대한 견해도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베르그송이라는 철학자는 유물론이 시간과 변화의 본질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물론은 시간과 변화를 단지 물질적인 현상으로 보기 때문에 변화의 연속성이나 시간의 지속성을 왜곡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론과 우연론 또는 유물론이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인간이 세상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는 방식에 유용한 서로 다른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대적 관점은 만물의 근원을 좀 더 복합적으로 탐구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히 유용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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