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물의 본질과 개체
인문학이란 인간에 대한, 특별히 나와 타인 간의 관계를 풍요롭게 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학문입니다. 따라서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인간'은 무엇인가입니다. 즉,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져 왔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본질이란 사물이 존재하는 이유, 즉 사물의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속성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인간의 본질은 상황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신체적인 종의 특성부터 이성적 사고와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정신적 특성까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즉, 동물과는 구별된 인간만의 본질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개체란 이러한 본질을 갖고 있는 독립적인 존재를 말합니다. 인간이 본질이라면, 홍길동이라는 한 명의 사람은 개체에 해당합니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지녔지만 허균이라는 사람보다 키가 크다거나 성격은 활발한 것과 같은 차별화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2. 플라톤의 이데아
이처럼 본질이나 개체라는 개념이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모두 인간을 포함한 사물이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450년쯤에는 사물의 본질을 물질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즉 유물론적인 사고를 통해 이 세상을 이해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 유명한 철학자인 플라톤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세상(인간과 사물)은 이데아, 즉 이상적인 형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데아란 그리스어 이데아(Ιδέα) 혹은 에이도스(eidos)에서 기원한 것으로 본래는 모습 또는 형태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데아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본질이며,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의 사물들은 그저 이데아를 비추는 불완전한 복제품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플라톤은 우리가 세상의 사물들을 이해하고 그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복제품이 아닌 그 본질인 이데아를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플라톤은 이데아만이 이상적인 형태이나, 현실에서는 이데아가 실현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는 삼각형을 아무리 섬세하게 그려도 완벽한 삼각형을 그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완벽한 직선을 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직선도 완성하지 못하는데 삼각형을 완성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완벽한 직선과 삼각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사고합니다. 즉, 우리 눈으로 실제 이데아를 볼 수는 없지만 그 존재는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의 불완전한 삼각형은 삼각형의 본질, 즉 이데아를 기반으로 할 때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삼각형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수학적인 공식뿐만 아니라 정의로움이나 아름다움, 또는 인간의 용기와 같은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이데아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실적으로 완전히 정의로운 인간은 없겠지만, 완전한 정의라는 개념은 분명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개념이 없다면, 무엇이 정의로운지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름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다운 꽃이 시든다 해도 아름다움이라는 이데아 자체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름다움의 본질입니다. 플라톤은 인간이 원래는 이데아의 세계에 있었으나 현실로 온 뒤로는 이를 잊어버리고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진선미를 인식하는 것은 원래 살고 있던 이데아의 세계를 기억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플라톤은 이를 동굴의 비유로 설명하였는데, 동굴에 갇힌 사람들은 현실의 그림자를 보지만, 그들은 그것을 현실이라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은 이데아의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플라톤은 동굴 밖에 존재하는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3.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론
반면,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반대하는 실체론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플라톤과는 다르게 사물의 본질은 그 사물 자체에 내재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물의 본질은 그 사물이 가진 고유한 특성과 기능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현실 세계에서 사물들은 오직 각각의 개체로 존재하며, 개체의 특성과 기능을 통해서만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영혼의 불변성을 주장했던 플라톤과는 다르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본질인 영혼도 개체와 함께 소멸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물의 본질 역시 개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고 이해한 것입니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론은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플라톤과는 다른 개개인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들을 분류하고 계층화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러한 그의 접근은 현실 세계의 사물들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물의 분류와 계층화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이를 통해 사물들의 공통된 특성과 목적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식물의 모습은 싹 트우기, 꽃 피우기, 열매 맺기 등의 각기 다른 특성과 함께 특정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식물의 목적은 생존을 위한 번식, 그리고 이를 위한 광합성과 영양 흡수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형태와 목적을 분석하고 이해함으로써 그 사물이 지닌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관찰과 경험을 통해 사물의 특성과 기능을 파악하고 분석하려 한 점이, 오늘날 과학적 사고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그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복과 같은 정신세계에 대해서도 탐구하였는데, 그는 인간이 자기 본질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행동한다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4. 현대 사회에서의 사물 본질에 대한 의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사물 본질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였습니다. 플라톤은 본질을 이상적인 형태인 이데아로 정의하고, 이데아를 기억하고 찾고자 하는 인간의 이해력과 노력을 강조했습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체의 특성과 기능을 통해 본질을 이해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관찰과 경험을 중요시했습니다.
이러한 방법론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두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둘의 다른 관점을 총체적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사물의 본질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그로 인해 삶은 좀 더 풍성해질 것입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인문학적 접근은 사물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그 본질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하게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 있고,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더욱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들어 주는 이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플라톤의 이데아가 맞는지 혹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론이 맞는지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들의 이론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어떤 이점이 있는지 생각하고, 이를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들의 이론은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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