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가의 의미와 변천 과정
사람들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어떤 문제에 직면하면 이를 국가에서 책임지고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가 탄생한 이래 오늘날까지 계속 국가가 존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불법 유전자 복제, 개인정보의 도용 등과 같이 새로운 윤리적 문제가 대두될 때에도 사람들은 당연히 국가에서 이를 해결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과거를 살펴보면 국가는 시대에 따라 다른 의미로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전근대사회에서는 국가의 주권자인 왕은 신과 같이 초월적인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국가나 주권자에게 반항할 수 없었고, 반항의 결과는 무자비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서양에서는 신의 권위가 약화되고 그에 따라 왕이 통치하는 국가의 정당성도 함께 약화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국가는 신이 아니라 이성적 사고를 하는 개인들을 통해서만 권위와 정당성을 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개인들에게 국가가 필요함을 설득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2. 개인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사회 계약론입니다. 사회 계약론은 데카르트가 주장한 이성과 함께 근대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계약론이 중요한 것은 대의 민주주의를 정당화하는 논리적 근거로 활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로크는 국가의 목적은 개개인의 권리인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고 보장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국가나 주권자는 개인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개인들이 국가를 함부로 없애거나 할 수 없는 절대적 성격을 여전히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개개인이 자신의 권력을 국가 혹은 국가의 대표자에게 양도하는 순간, 개개인은 권력이 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발적인 권력 양도는 자발적 복종과 다르지 않다는 주장도 이런 이유에서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대의 민주주의는 민주적일 수 없으며, 오히려 민주주의의 이행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3. 사회계약론적 관점
홉스는 리바이어던이란 책을 통해 국가나 공동체가 없는 자연상태를 가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상태에서는 불안과 불행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개개인의 안정과 행복을 위해서는 문명상태인 국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에 주장에 따르면, 자연상태의 인간은 자신의 신체와 재산을 보호하려는 욕구를 지니게 되는데, 이는 타인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상태는 전쟁상태와 다르지 않고, 상호 불신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확고한 약속의 이행이 전제되는 강력한 계약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에 기저에는 생존 욕구가 인간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고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만약, 생존에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리바이어던으로 묘사된 괴물과 같은 국가라고 해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모든 갈등과 대립을 종식시켜 줄 국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4.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의 의미
반면 루소는 자연상태에서 인간 사이에 갈등은 있을 수 있으나 인간은 충분히 자유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루소는 일방적인 지배나 복종의 상태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미 자연상태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또한, 클라스트르라는 정치인류학자는 국가 형식이 존재하지 않았던 사회는 홉스가 생각한 것과 같은 야만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고도의 문명화된 사회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오히려 야만사회는 국가사회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가 간 전쟁과 같은 개인이 일으킬 수 없는 대규모의 갈등을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그에 연구에 따르면, 인디언들은 독립적인 자유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고통을 참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회에서 독립적인 성인으로 인정받게 되는데, 이러한 행위는 강제적 고문이 아닌 독립적인 자유인들의 공동체를 지향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인디언들이 고통에도 불구하고 신음소리를 내지 않고 고통을 참는 것은 문명인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인 셈입니다. 타인을 억누르려는 권력욕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자신의 몸에 상처를 새기고 이를 되돌아보는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야만적인가에 대한 그의 주장이 오늘날에도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5. 복종과 지배를 벗어난 자유로운 관계
더 나아가 클라스트르는 인간이 사는 세상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라면 동물의 세계와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려면 자유인의 의지를 갖고 동물과는 다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즉, 강자에게 복종하지 않고 약자를 지배하려고도 하지 않는 용기와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는 경제적 억압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경제적 억압은 단지 정치적 억압의 부차적인 결과임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노예로 대표되는 자유를 상실한 인간이 오늘날에는 노동자로 대체되고, 지배자 혹은 권력자는 세련된 형식의 국가로 변신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타율적인 복종에서 자발적인 복종으로 변한 것을 의미 있는 진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복종에서 자유로워졌는지를 살펴보면 양상만 바뀌었을 뿐 지배와 복종으로 이루어진 지배구조는 여전히 동일하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국가 존재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개인들이 많은 것을 보면, 국가라는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한 클라스트르의 외침이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자유인으로 사고할 것을 도전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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