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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인간과 윤리 : 동정심과 보편적 도덕법칙 및 자율 윤리학

by juneane 2024. 3. 7.

1. 인간과 윤리에 대한 이해

인간의 역사상 가장 불행한 계층은 아마도 노예였을 것입니다. 노예는 자신이 노예로 살겠다고 결단해서 노예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해진 어떤 사회적 원칙에 의해서 노예가 된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태어나자마자 노예의 삶을 배우고 자란 이들에게는 노예의 삶이 자연스럽게 다올수도 있습니다. 사회에서 강요한 규범이 이미 그들의 내면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전근대사회에서 발현되는 규범원칙의 특징은 구성원들이 그 원칙을 선택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운 좋게도 왕족이나 귀족으로 태어났다면 그에 맞는 특권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되며, 운이 나쁘게도 평민이나 노예로 태어났다면 거기에 맞춰 순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는 윤리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반려동물이 주인의 명령에 잘 따른다 하더라도 그 동물을 윤리적이라고 하지는 않는 것처럼, 개인의 자유가 없는 상태에서의 규범 준수는 윤리적인 행동으로 간주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명령과 규범원칙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존재는 비윤리적인 존재로 사는 것뿐입니다.

 

노예의 삶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교훈 한 가지는 바로 윤리는 자유로운 주체 간에만 생겨나는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2. 인간의 동정심

철학자 흄은 인간이 지닌 선척적인 동정심이 인간의 윤리적 기초라고 강조했습니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에 비춰보아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으로부터 윤리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가 이야기하는 동정심은 형이상학적 감정은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고통임을 깨닫는 과정에서 자비의 마음이 나온다고 가르치는데,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는 형이상학적 접근과는 그 성격을 달리합니다. 오히려 그는 동정심은 실제 인간의 삶에서 뼈아프게 경험되는 실체적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동정심이란 남의 어려운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인간은 자기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아픔을 통해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타인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수술의 고통을 느껴본 사람은 수술대 위에 불안하게 올라가 있는 환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위험할 수도 있는 수술을 꼭 해야 하는 것일까, 수술 중간에 깨기라도 하면 고통스러울 텐데 괜찮을까, 혹시 수술 이후에 깨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이러한 불안감은 직접 그 고통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타인을 향한 동정심의 기초가 됩니다. 

 

그런데 반드시 직접적으로 고통을 경험해야만 동정심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흄의 주장에 따르면, 사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아는 사실은 그저 타인이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해 있으며, 그로 인해 괴로운 감정을 느낄 것이라는 추론뿐이라고 합니다. 이는 인간은 모든 종류의 고통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는 타인의 고통을 마치 나의 고통인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정신의 있다면 모든 고통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더라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동정심에서 도덕과 윤리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향한 애처로운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을 사람들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라고 말합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사고로 다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한 이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행동은 윤리적입니다. 타인을 향한 동정심을 토대로 자기 자신의 이익을 넘어선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윤리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동정심과 윤리에 대한 사진입니다.

3. 보편적 도덕법칙

반면, 칸트라는 철학자는 개인이 불완전하고 우리가 처한 상황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으므로, 가변적이고 불완전한 동점심과 같은 감정을 토대로 윤리를 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감정이 변할지라도 보편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절대적인 차원에서의 도덕법칙이 필요하며, 그것이 윤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칸트에 따르면, 한 개인은 어떤 상황을 마주쳤을 때, 자기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마치 한 개인이 절대적인 입법자가 된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법칙은 보편적인 성격의 개념이므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편적 법칙이 아니라 나에게만 유리한 사기적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자율 윤리학

 칸트는 보편 법칙을 만들고 그것을 점검하고 실천하는 이를 자율적 주체라고 불렀습니다. 자율적 주체는 동정심에 근거한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만약 자기 자신과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그에게는 일말의 동정심도 생기지 않기 때문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이는 윤리적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칸트는 동정심에 근거한 행동은 보편적일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순수한 이성의 법칙에 의해서 행위가 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칸트의 자율 윤리학입니다. 자기 자신이 법칙을 만들고 그 법칙을 자의에 의해서 지키기 때문에 자율적인 윤리라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외관상으로 보면 한 개인이 자율적으로 법칙을 준수하는지 아니면 강제적으로 법칙을 준수하는지 구별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프로이트와 같은 심리학자는 타인의 영향을 자기도 모르게 받아 그것에 따라 행동한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부모의 영향을 받아 행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