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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유한한 인간을 보완해주는 타인의 중요성

by juneane 2024. 3. 7.

1. 인간의 유한성

인문학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여 우리 사회를 좀 더 행복하고 바람직하게 하려는 관계지향적 학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가 번번이 실패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많은 철학자들이 이성을 무기로 하여 진리를 찾아내려고 수많은 노력과 시도를 거듭해 왔습니다. 마치 우리의 경험과는 무관한 진리를 인간의 이성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이러한 사조를 합리론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것은 진리라기보다는 우울함이라는 감정이었습니다. 타자가 배제된 진리 탐구의 끝은 고독인 셈입니다.

 

그에 반면, 경험론은 불완전한 타인을 견뎌보겠다는 의지를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패하더라도 타자와 세상과의 경험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극단적인 합리론과 경험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합리론적 성향을 지닌 경험론자나 경험론적 성향을 지닌 합리론자를 발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예를 들어 경험론자로 알려진 흄도 진리라는 것은 우리 정신에 근거한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사실이며, 어떤 시도도 인간의 유한성을 해소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2. 버클리의 합리론과 완벽한 타인

그렇기에 버클리라는 철학자 겸 성직자는 절대적 타자인 신만이 우리의 유한성을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영국 사회에는 경험론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경험을 통해서만 발견되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버클리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경험론을 일부 수용하기는 했으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신의 필요성을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경험론이 지배적이었던 이 당시, 기독교의 위기는 보이지  않는 신을 어떻게 경험으로 확인시켜 줄 수 있는가였습니다. 그래서 버클리는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경험으로는 확인되지 않는 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그는 '대화'라는 책을 통해 경험론에 익숙한 사람들을 설득하였는데, 설득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상대방의 입장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므로 경험론을 일부 수용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습니다.

 

그는 '존재하는 것은 지각된 것이다.'라는 경험론적 명제를 도출하면서, 지각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경험론적 견해를 지지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는 '신'은 지각의 대상이 아니라 지각의 주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신을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그는 한 개인이 지각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반문합니다. 예를 들어 집에 오는 길에 집 앞에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한 대를 보았는데, 집 안에 들어서면 이 자동차를 더 이상 경험적으로 지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동차를 느낄 수 없다고 해서 자동차가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경험론적 기준에 비추면 이 자동차는 지각되지 않기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물론 자동차가 있는지 집 밖에 다시 나가보아 확인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집에 있는 동안에 자동차가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가 우연히 내가 집 밖에 나갔을 때 다시 돌아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버클리는 이 지점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습니다. 만약, 자신이 집에 있는 동안 밖에 있는 친구에게 자동차가 있는지 확인을 받을 수 있다면 자신이 자동차를 지각하지 못한다고 해도 자동차가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어느 시공간에든 인간의 유한성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완벽한 타인이 바로 신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경험론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에게는 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3. 들뢰즈의 경험론

그런데, 버클리가 이야기한 완벽한 타자, 신의 위치에 평범한 인간을 놓을 수는 없을까 생각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들뢰즈라는 철학자입니다. 들뢰즈는 초월론적 경험론을 주장했는데, 초월론적 경험론이란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경험은 타자와의 마주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초월론적 경험론은 바이러스의 전파 원리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전파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생물처럼 빠르게 전파되지만, 환경이 맞지 않으면 무생물처럼 죽은 듯이 존재합니다. 전파될 수 있는 환경이란 다른 생명체 안에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에는 바이러스가 생명체처럼 자신을 복제 생성하지만, 홀로 있는 경우에는 그저 단백질 덩어리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결국 들뢰즈가 초월론적 경험론에서는 경험을 인식하는 주체보다는 타자와의 마주침이라는 근본적 경험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변하지 않는 초월적인 주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연인과의 헤어짐을 경험한 이는 결코 그 전과 같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경험을 초월하는 주체로서의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타자와의 마주침 이후로는 완전히 달라진 자기 자신을 경험하게 됩니다.

 

4. 상대적인 타인의 중요성

상대적인 타인에 대한 그림입니다.

들뢰즈는 나의 유한함을 보완하기 위해 신이 아니더라도 그저 다른 사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집 앞에 주차된 자동차가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려면 신이 아니라 주차장이 잘 보이는 집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만 물어봐도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먼 곳에서 일부로 여기까지 와서 차기 있는지 직접 확인해 줄 수 있는 애인이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타인이 있다면 우리가 언제든지 그의 시선을 얻을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또한, 타자는 단순히 자신의 경험적 한계를 보완해 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온 타자와 마주쳤을 때 우리는 낯선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새로운 하나의 세계와 마주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자기 자신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인생이 늘 새롭고 기대되는 것은 바로 타자와의 마주침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삶에서 타자는 그저 생존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파트너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완전히 새롭게도 할 수 있는 선물이고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새로운 세계와 마주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은 모험이라고 하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