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의 세계
객관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객관적이란 "자기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거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흔히 이 세상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확신하며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눈에 보이고, 인간의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죽더라도 이 세계는 그대로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장이 죽었을 때를 대비해서 가족 앞으로 보험을 들어놓는 것은 모두 이런 믿음에 근거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은 사실 조금만 들여다봐도 허점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보는 세상과 돌고래가 보는 세상은 같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구 안에서 살아가지만 서로 다른 세계를 갖고 사는 것입니다. 만약 물속 세계라서 비교가 안된다고 하면 원숭이가 보는 세계로 바꾸어도 그 차이는 동일합니다.
누군가가 다른 생물종을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반박한다면 동일한 인간의 세계를 비교해도 그 결과가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60대 남성 두 명을 비교한다고 했을 때 그 둘은 서로 다른 세계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60년 동안 그들이 경험한 것이 다르고 인식하는 것도 신체의 능력도 모두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 남성이 색맹이라면 그가 이해하는 세계는 다른 이들과는 사뭇 다를 것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하늘이 파랗게 보인다고 해서 색맹인 사람에게 그 세계를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색맹인 남성에게는 하늘이 그렇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수의 사람들이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참인 것도 아닙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것은 빛의 굴절에 의한 현상이며, 우리는 진짜 하늘이 파란 것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그 파란 하늘이 회색빛으로 물드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2. 초월론적 세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객관적 세계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객관적 세계가 없이 모두 각자의 세계 속에 살아간다고 하면 너무 복잡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칸트라는 철학자도 이 부분에 대해서 오랜 시간 동안 고민을 해왔습니다. 무엇인가 우리 외부에 별도로 존재하는 객관적 세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 말입니다. 칸트는 인간의 인식 능력이 없다면 둥근 사과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눈으로 그 물체를 볼 수 없고 둥글다는 개념 자체가 머릿속에 없다면 둥근 사과를 보고도 그것을 둥근 사과라고 인식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칸트는 여기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한 가지 발견합니다. 그것은 둥근 사과가 그저 자신이 인식한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그 둥근 사과와는 무관한 사과 자체에 대해서 사유할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여전히 인간은 여전히 감각적으로만 그 사과를 경험하겠지만, 칸트는 인간의 인식 너머에 있는 초월론적 대상으로써의 사과를 찾았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단지 지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원인을 초월론적 대상, '물자체'라고 불렀습니다. 이 초월론적 대상은 인간의 경험이나 인식에 앞서 이미 자체적으로 주어진 대상입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대상은 물자체의 표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물자체는 인간과는 무관하게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마음대로 세계를 구성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물자체는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타자를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타인은 나와 다른 또 하나의 세계인 것입니다.
3. 현실적 세계
그런데, 이와 같은 칸트의 주장은 역설적으로 초월론적 세계가 아닌 현상 세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물자체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현상세계에서의 인식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둥근 사과를 먼저 이 세상에서 인식해야만 인식 너머의 초월론적인 사과 그 자체를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니체는 물자체라는 것은 단지 현실 세계에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추상적으로 사후에 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칸트가 현실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려고 할 때, 니체는 현실 세계를 그 자체로 긍정하려 했습니다. 당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도 잘 알 수 없는 추상적인 세계가 아니라 지금 자기 자신이 두 발을 내딛고 있는 현실적 세계라는 말입니다.
니체는 초월론적 세계에 집착하는 이들은 오히려 현실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 피난처로 만든 일종의 허구적 가상세계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4. 역사적 세계로 나아가는 '힘에의 의지'
이러한 고찰을 통해 니체는 세계의 가치는 인간의 해석 속에 있고,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데 유리한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해 나간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인간이야말로 동물과는 다르게 역사적인 차원에서 현상세계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동물처럼 생물학적으로는 크게 변하지 않더라도 역사를 다양하게 해석함으로써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어떤 해석의 틀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나가려는 힘이 바로 인간이 가진 '힘에의 의지'라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자신에게 부정적이고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는 동시에 자신에게 힘이 되는 방향으로 노력한다는 의미입니다. 니체는 인간이 단순히 생존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위해 산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은 그저 생존하기 급급한 시시한 존재가 아니라는 그의 주장이 따스한 위로가 되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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