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의 역사
인간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간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란 인간이 살아온 발자취를 기록해 놓은 것을 의미하며 인간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해석까지도 포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도 역사는 역사가들이 선택한 사실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기록이 되려면 어떤 사건이 실제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 사건이 의미가 있다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역사는 단지 승자의 기록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2. 역사적 사건
그렇다면 어떤 사건이 역사적인 사건이 되는가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만약 역사적 사건의 분류 기준이 자의적이라면 어떤 이들의 비판처럼 역사는 극히 일부 권력층에게만 의미 있는 기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역사라는 것은 일부 계층에 의해서 억지로 만들어질 수 없는 인류의 유산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일정 지역이나 일정 시간 동안은 강압적인 힘에 의해서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역사적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외부적인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 내부에서 표출되는 변화의 힘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주체나 새로운 대상 등의 출현으로 기존 사건과는 다른 의미가 생성되는 사건이 발생할 때에만 사람들은 그것을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의 출현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1900년 대에는 들고 다니는 휴대용 전화기조차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대상의 출현은 인류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역사적 사건으로 인정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집 안에서 키우는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보며 이 생명체의 등장은 정말 역사적이다라고 주장한다면 사람들은 매우 의아해할 것입니다. 2000년 전에도 강아지는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므로 강아지의 출현은 역사적인 사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어떠한 대상이 계속 존재했다 하더라도 그 관점이 급격히 변화되었다면 그에 따른 의미가 변화되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1920년 미국에서는 21세 이상의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보장되도록 법이 개정되었는데 이 사건은 역사적입니다. 여성은 1920년 이전에도 여성이고 그 이후에도 동일한 생물학적 여성이지만,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발생한 것입니다.
3. 역사와 세계정신
인문학 중 철학 분야에서도 이처럼 인간의 역사를 연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중세사회의 붕괴 이후 세상에 찾아온 급격한 변화를 온몸으로 경험한 사람들은 신을 대신해 새로운 의미를 찾기에 분주했습니다. 철학자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었는데, 인간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습니다.
그중에 한 명인 헤겔이란 철학자는,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다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적인 것은 말 그대로 우리가 현실에서 오감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고층의 아파트는 내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현실적인 문명세계입니다.
그런데, 현실의 이 아파트는 현대인들의 이성이 실현된 하나의 결과물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한국에서는 경제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산업화, 도시화가 추진되면서 효율적이고 집약적인 공동 주택 양식이 필요했습니다. 그 결과 나타난 이성적인 결과물이 아파트입니다.
헤겔은 이성적인 것을 그려내는 인간의 사유는 현재 자신의 상황을 반성하고 개선점을 만들어나가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사유하는 인간은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를 바라보며 시대가 변했으니 주거공간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넓은 면적의 녹지 공간을 확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헤겔은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한 개인이 아니라 거대한 집단의 힘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힘을 세계정신이라고 표현했는데, 한 인간은 바로 이 세계정신에 포함된 일원이라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계정신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을 역사라고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4. 역사와 생산력
반면, 헤겔의 역사적 관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철학자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헤겔은 자본주의 사회가 세계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역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었던 마르크스는 자본론이란 책을 통해 헤겔과는 반대로 물질적인 것이 인간의 사고에 반영되는 것뿐이라는 유물론적 변증법을 주장했습니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부르주아 사회로 대변되는 자본주의는 불평등과 갈등을 조장하는 극복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관념적인 세계정신이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을 지닌 인간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행동이 이 세상을 바꾸고 새로운 역사를 쓴다고 믿었습니다.
5. 역사의 목적
그런데, 인간의 역사에는 어떤 목적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겨납니다. 헤겔은 역사에는 어떤 지향해야 하는 목표,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생각한 목표가 부르주아 사회였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은 것이지만, 역사의 목적이 있다는 생각만큼은 많은 이들에 지지를 얻기도 했습니다.
반면, 마르크스는 역사란 끝이 없는 역동적 과정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즉, 역사에는 어떤 특정한 목표나 목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유롭고 생산력을 지닌 개인들이 자신의 삶을 발전시키는 과정 속에서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산력이란 것도 개개인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전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마르크스가 꿈꾸던 억압이 없는 사회란 어떠한 힘의 체제도 없는 무정부 상태의 사회만을 의미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목적 없는 역사의식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체계가 사라진 사회는 혼란을 야기한다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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