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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한센병자로 살펴본 네크로파워의 정의, 역사 및 목적

by juneane 2024. 3. 11.

1. 네크로파워(Necropower)

인간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여러 가지 측면에서의 접근이 있을 수 있지만, 전통적으로 강조되는 두 가지 개념은 바로 삶과 죽음입니다. 인간은 살아있는 존재이지만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지에 대한 고민 끝에는 죽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가 반드시 등장하게 됩니다.

 

죽음의 문제를 신의 관점에서 해결하려는 종교적 노력은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죽음을 네크로파워라는 시각에서 접근하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네크로파워라는 개념은 아쉴 음벰베라는 사람의 Necropolitics라는 책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네크로파워는 미셸 푸코라는 철학자가 주장한 바이오파워(Biopower)의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바이오파워가 권력이 인간 생명 활동에 깊숙이 개입하여 국가의 생산력을 증대시킨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면, 네크로파워는 권력은 생명뿐만 아니라 죽음에게도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끊이지 않는 전쟁과 테러 등의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죽음조차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기술로 사용되고 있음을 폭로한 것입니다.

네크로파워(Necropower)와 관련된 그림입니다.

2. 네크로파워의 역사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네크로파워는 주로 치유될 수 없는 병자들의 집단을 통치하는 것과 관련되어 나타났습니다.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을 격리하는 장소는 네크로파워의 작동 방식을 잘 설명해 주는 사례입니다. 특정 집단을 예외적으로 분리하여 그곳에서는 죽음을 통치 기반으로 삼고 권력을 유지한 것입니다.

 

그러나 네크로파워는 꼭 확정된 병자 사회에만 적용되어 나타나고 운영되는 것은 아닙니다. 즉, 병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네크로파워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점을 코로나19를 통해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는 전 세계 시민들을 "예외 상태"에서 살게 하였습니다. 격리 중에는 코로나바이러스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 건강한 사람도 '사회적 거리두기' 규정에 따라 친구를 만나거나 가족을 방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국가의 역할은 중국 우한시 봉쇄와 같은 건강한 사람들로부터 잠재적인 큰 위협을 분리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혹자는 식민지에서 노예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과 같은 것도 네크로파워가 아닌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는 노동력의 향상을 그 목적으로 한다는 데에서 차이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크로파워는 노동력 향상과는 거리가 먼 별도의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한센병자들의 사회에서 기대하는 것은 노동력은 아닐 것입니다.

 

3. 한센병자를 통해 살펴본 네크로파워

사람들은 고대부터 한센병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역겨운 상처, 감염의 위험, 그리고 원인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에, 한센병은 저주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구약성경 레위기 13장에 따르면, 한센병은 죄인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들은 찢어진 옷을 입고, 지저분한 머리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피할 수 있도록 '나는 부정하다'라고 소리를 질러야 합니다. 게다가, 그들은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사회 밖에서 혼자 살아야만 합니다. "살아 있지만 부상을 입은 상태"로 유지되는 한센병자와 함께 있는 것은 불경건을 의미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관점을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제 나병 협회(2020)에 따르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목록에 지명된 크레타 북동부 엘라 운다 만에 있는 아름다운 섬 스피리농가(Spinalonga)는 1903년부터 1957년까지 한센병자를 위한 곳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곳의 생존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스피리농가(Spinalonga)의 삶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으나, 폴렛(Pollet, 1973)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L'Ordre는 이 섬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스피리농가(Spinalonga)에서 그의 전 생애를 이야기하는 라이몬다키스(Raimondakis, 1914-1976)의 눈을 통해 한센병자의 삶을 보여줍니다.

 

다큐멘터리는 정부가 한센병자를 체포하여 섬으로 보냈다는 사실, 그로 인해 한센병자들은 가족과 집을 잃게 되었고 재산은 압류되었으며 시민권도 없는 존재로, 즉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살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집이나 신체에 대한 상실뿐만 아니라 정치적 지위의 상실까지 경험한 것입니다.

 

게다가 1940년대에 한센병 치료법이 발견되었지만 그들은 1957년까지 그곳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병에 대한 치료를 한 번도 받지 못한 야만적인 상태에서 격리되었습니다. 그들은 식량과 담수가 충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식량을 재배하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희망도 없이 동물처럼 위험에 처했습니다.


라이몬다키스는 "나는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고 36년 전에 투옥되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분명히 법 밖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국경은 세상을 법의 내부에 사는 것과 법의 외부에 사는 죽음, 두 개의 다른 장소로 나누는 선입니다.

 

이것이 바로 네크로파워의 목적인 셈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는 별도로 분리되어 가족도, 희망도, 권리도 죽음 앞에서 사라진 그런 법 밖의 세상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는 분리되었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때문에 공포의 정치적 효과는 극대화될 수 있습니다. 

 

4. 네크로파워의 인류애적 판타지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한센병자들을 위한 장소를 지정하는 것은 타당해 보입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보면 한센병자를 위해 노력을 다한 경우도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이를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믿기도 합니다. 


그러나 네크로파워는 죽음의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가상의 적을 만들고 그들을 향한 대중들의 증오를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데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중요한 점은 적은 한센병자만 되는 것이 아니라 가치가 증명되지 않은 경우라면 누구든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반란을 일으킬 힘이 없는 사람들을 적으로 만드는 것은 매우 안전하고 효과적인 권력 증대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한센병자와 같은 집단은 비난의 대상이 됨으로써 그제야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네크로파워가 이런 집단을 죽이지 않고 계속 살려두는 진정한 이유입니다. 한센병자들이 불쌍해서, 인류애가 발현되어 그들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상태로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진 이들을 보이는 존재로 되돌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류애가 아닐까 합니다.